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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About Abstract.

NO.3 / 2024.03.02. 24:33

흔히 추상적이라고 하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추상화에 대한 이미지도 모호한 표현들로 채워진 캔버스가 떠오른다. 그래서 추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것이라고 여겼고, 모호한 것은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불편한 개념이라고 인식해왔다. 이리저리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면 이내 "그게 무슨 뜻이냐"며 따지듯 묻는 상황을 쉽게 맞이할 수 있었다. "A라는 거야? B라는 거야?"라고 말이다.

어릴 적 수학을 배울 때 "이 개념을 아는 게 인생에서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숫자를 우리 현실에 적용하려고 보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굉장히 많은 곳에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얼핏 보면 좋은 결론이 아닌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곳에 활용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엑셀은 문자와 숫자를 이용한 매우 추상적인 프로그램이다. 활용하기까지 어렵지만,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스크립트 코드는 명령형 프로그램이니 그보다 더 추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엑셀이라는 프로그램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 내가 일했던 환경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은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과거에 재직했던 회사에서는 "초등학생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실제로 일리 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지니스 기회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고 단순하기 때문에 제약된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제품을 만들 때에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는 대체로 금방 레거시가 되어 쓰지 못하는 형태가 된다. 어떤 일이든 추상화하는 능력은 꽤 중요하다. 구체화가 필요한 경우는 신중해야 한다. 물론 추상의 수준이 높아지면 경험 디자인에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유저가 난해하게 느낄 가능성도 있다. Notion은 다재다능한 툴이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때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찾으려는 어떤 공식은 다수의 구체적 현상을 하나로 관통하는 추상을 만들려는 시도와 같다. 이것이 인사이트라고 부르는 순간일 것이다. 수학 난제도 결국 하나로 통하는 단순한 법칙을 찾으려는 인간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답이 단순할수록 아름답다고 표현하니까. 프로그래밍에서 좋은 코드도 군더더기 없고 단순성을 유지한 경우 아름답다고 한다. 이것은 디자인 영역에서도 군더더기 없음을 지향하는 것과 역시 같다.

그래도 꽤 오래 디자인과 제품 만드는 일을 하다보니 모든 영역에서 도달하고자하는 지점이 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별적 경험들이 비슷하게 느껴지고 연결될 때 이상적인 문제 해결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추상은 세상과 문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추상의 레벨을 높이면 연결되지 않던 개념들도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닿지 않을 것 같은 개념이 연결되어 창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