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마실— Steidl Book Culture
서촌에 갔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얼마 전 갔었지만, 동네를 탐방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벼르던 슈타이들 전시가 무거운 몸을 움직이게 했다. 집에서 서촌까지 차로 1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했다.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해가 좋았다.
Steidl Book Culture
GROUNDSEESAW, 서촌
24.09.14 SAT — 25.02.23 SUN
점심을 먹고 전시장에 도착해서 티켓을 샀다. 2시 10분 정도 되었는데 마침 도슨트가 2시에 시작했다고 했다. 2층부터 4층 까지가 전시관이었다. 슈타이들 작업량이 어마어마한지 매층이 빽빽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도슨트를 통해 보면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일화들을 알 수 있는 점들이 좋았다. 나는 뼛속까지 디지털 공예가이지만, Typography는 책에 묻을 때 디지털로는 전달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보통의 전시와는 다르게 책을 주제로 한 전시여서 아크릴 속에 보관 된 책을 제외하고는 들춰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너무 많아서 다 볼 수는 없었지만.
Paper is the body, Typography is the soul.
Gerhard Steidl
사실 거장들의 작품. 작업 활동이 멋있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천재성 때문에 그들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것을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촌 둘러보기
SOCKSTAZ, 보안카페, MK2, 베스파
SOCKSTAZ라는 귀여운 양말 가게가 있었다. 로고며 심볼이며 상품 DP가 차분하고 귀엽다. 차분하고 귀여운 느낌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무드인데 내 외모와는 많이 어울리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있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지인이 있어서 양말 두개를 구매했다. 포장도 귀여웠다.
보안 여관이라는 전시장이 유명하길래 가봤더니, 아쉽게도 모두 전시 준비 중이다. 보안 카페라는 곳이 있어서 커피로 몸을 좀 녹일 생각으로 방문했다. 여기도 원래 전시장이 지하에 있는데, 모두 준비중이다. 제주- 어쩌구 하는 브루잉 커피를 마셨는데 회사 커피의 퀄리티가 너무 높아서인지 이제 좀처럼 사먹는 커피 맛에 만족하기 어려운 입맛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금연을 하면 맛의 편차가 극명해진다. 맛있는 것은 너무 맛있고 맛 없는 것은 입 버린 느낌이 든다. 카운터에 있던 레코드가 눈길을 끌었다. 젊은 날의 오노 요코와 존레논이다. 나는 비틀즈 세대는 아니지만 그들의 과거 모습들을 보면 꽤 빛났겠다는 생각이 든다.
8-9년 전 쯤일까, 서촌에 자주 왔었는데 그 중 MK2 카페에 대한 기억들이 조금 남아있다. 여전히 건재한 느낌이다. 종이로 붙어진 무심한 간판도 매력있다. 원래 종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MK2가 있는 길의 무드는 처음 경험했을 때처럼 여전히 세련된 감상을 준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촌에는 유난히 베스파 오토바이가 많은 느낌이다. 한 번은 들어가보고 싶어지는 비스트로의 가게 앞에도 주인장의 것인 것 같은 빨간색 베스파가 보였고, 길 곳곳에 베스파가 세워져있다. 심지어는 과거에 연인이었던 친구도 서촌 작업실 그리고 베스파를 가지고 있었다. 서촌과 베스파는 뭔가 있나보다.
칸다소바와 차이치
서촌 맛집에서 가격과 가치에 대한 생각
서촌 탐방의 시작은 칸다소바의 라멘이었다. 서촌 맛집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다. 내부는 바 테이블로 구성되어있고 메뉴는 4-5가지로 단촐했다. 메뉴는 웨이팅 전에 주문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에케(돈코츠) 라멘과 교자 3 피스를 함께 주문했다. 염도 선택이 100%, 80%가 가능했는데 80%를 선택했다. 총 14,500원을 지불했다. 교자가 먼저 나왔고 충분히 예상되는 맛이었다. 라멘은 나에겐 너무 기름진 맛이었다. 염도를 낮게 선택해서 기름진 정도와 간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본 염도로 할 걸 후회했다. 다대기와 마늘 등으로 부족한 간을 채웠더니 조금 괜찮아졌지만 다소 아쉬운 식사였다.
전시를 다 보고 저녁 메뉴를 고민했는데, 원래는 안덕에 갈 생각이었다. 원래도 유명한데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나와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타임이 30분 남아있어서 둘러보던 중에 수요미식회에 나왔던 만두 맛집인 차이치라는 곳이 보였다. 공교롭게도 점심을 먹었던 칸다소바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었다. 점심 메뉴와 구성이 완전히 겹치는 면과 만두이지만 점심의 아쉬움을 달래보고 싶어서 들어가 2층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만두는 10,000원 그리고 유니짜장 7,000원에 두 메뉴를 주문했다. 역시 만두가 먼저 나오고, 첫 입을 베어무는 순간.
육즙 모야…?
조미료의 맛이 있지만, 칸다소바의 아쉬움이 말끔히 사라졌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가격이 절대적으로 비싼가 저렴한가를 나눈다기 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준 가치가 얼만큼인가에 따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칸다소바도 충분히 훌륭한 것 이었지만 개인적인 만족은 차이치에서 얻었다.
하지만 얄궃게도 이런 개인적인 감상이 무색하게 칸다소바는 거의 내내 웨이팅이 있었지만 차이치는 그렇지 않았다. 디자인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기준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가지고 설득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이다. (갑자기?)
서촌의 시간은 꽤 멈춰있었다. 네이버 지도에 즐겨찾기 되어있는 한 가게가 이름만 익숙할 뿐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는데, 그 곳에 가보니 왜 그 곳을 기억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오래 전에 자주 오갔던 곳이다. 나는 멀어졌지만 기억 그대로 있어서 묘하게 반가웠다. 너무 멀지는 않게 종종 들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