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뭔지 알 것 같다.
어렴풋하던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를 열망하거나 깊이 생각하다가 몇몇 경험을 거치며 알 것 같다고 말하는 그런 순간들. 알고 싶은 뭔가에 대해 미숙하던 시점에는 그것을 알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던 나였다.
내 직업을 예로 들자면, 좋은 디자인은 무엇일까? 어떤 것들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같은 질문들이다. 보통은 정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 이런 물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는 몇 차례 경험이 쌓이면서
아, 이제 뭔지 대충 알 것 같다.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경험을 토대로 곱씹어 보았다.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나는 그것에 대한 소비자가 아닌 평가자의 시선이 된다. 얻은 것이라면 좀 더 분석적으로 보는 시선이 생기고 어렴풋한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타인과 협업을 하는 관점에서는 꽤 유용한 무기가 된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설득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이던 때에는 좋아하는 것만 있었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동료를 설득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조금씩 알아가면서 분석적으로 왜 그런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시점에는 확실히 동료를 설득하는 일은 이전보다는 매끄러워졌다. 이런 것들이 얻은 것이지 않을까.
반면 나중에 깨달았지만 잃은 것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소비자가 아닌 평가자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것인데, 가령 설명할 수 있는 범주의 것들에 갇혀버린다거나 더 이상 온전히 느끼지 않고 먼저 분석하려 든다는 것이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좋아" 같은 것들이 없어지는 것. 분명 그냥 좋은 것들도 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그러니까 설득할 수 없는 것은 곧 무가치해지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이유를 댈 수 없는 '그냥 좋음'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어느새 자리 잡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알 것 같다'는 느낌조차 진짜 아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된 상태, 어쩌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차린 단계 정도. 결국 알 것 같은 느낌을 얻는 대가로 온전히 좋아하던 마음을 내어준 느낌이랄까.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을 섣불리 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냥 더 느끼고 이유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쪽도 무가치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