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RITE DOWN MY THOUGHTS, CREATE DESIGNS,

TAKE PHOTOS & VIDEOS, AND LISTEN TO MUSIC MOST OF THE TIME.

(COPYRIGHT © 2024 ANZI. ALL RIGHT RESERVED)

이상적인 노트Ideal Digital Archive

NO.32 / 2025.01.16. 24:00

이상적인 노트라고 쓰고 Ideal Digital Archive라는 부제를 단 것은 노트가 글을 주로 쓴다는 행위보다는 생각이든 이미지든 이벤트든 캡처해서 보관하는 형식이 나에게는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디톨로지>와 최근 <창조적 시선>을 집필한 김정운 작가 (여러 직업이 있지만 요즘 작가에 전념하시는 듯해서 작가로 소개했다)에게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창조라고 부르는 것 번뜩이는 아이디어 같은 것이기보다는 내가 쌓고 경험한 것의 편집의 결과라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에 완전히 동의한다.

20대와 30대 초반 시절에 왜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까를 떠올려보면 그동안 모은 것들이 넘치던 때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들을 잘 모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중고등 시절과 군대에서는 그것이 샤프와 노트로 발현되었었고, 대학부터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했던 것 같다. 물리적인 하드디스크에 기록하는 것은 조금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Cyworld의 클럽을 비공개로 개설해서 개인 노트로 활용했던 기억도 난다. 이것의 장점은 컴퓨터를 포맷해도 유실될 일이 없었다는 것. 단점은 모든 종류의 기록을 하기에는 글과 사진에만 적합한 형태였다는 것 정도다. 이미지 용량 제한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 대학교 시절 처음 mac을 구매하게 되면서 이상적인 노트 찾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Journler for Mac이라는 소프트웨어였다. 모든 것을 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아카이브의 첫 시작을 도와준 고마운 소프트웨어이다. 물론 지금 여기에 기록했던 자료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다른 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어느 정도 마이그레이션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Evernote라는 것이 출시되었다. 심플하고 막강한 노트 기능, 폴더와 태그 그리고 강력한 웹 클리퍼 기능에 매료되어 이곳에 내가 접하는 모든 자료를 저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실제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는 않지만 로그인하면 작업 내역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운이 좋은 경우는 포토샵 파일도 모두 이곳에 담겨 있었다. Evernote는 기억하기로 2009년 정도부터 사용하기 시작해서 2018년 정도까지 썼으니 대략 10년 가까이 사용한 셈이다. 실제로 Evernote를 사용하는 동안 의미 있는 작업을 하기도 했어서, 인생에서 많은 의미 있는 일들이 노트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당시 나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기록에 충실했기 때문에 작업 노트나, 클리핑해둔 자료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2017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Notion이라는 제품이 나온 당시 처음 제품을 사용해보고 상당히 매력적인 도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무료 버전이 따로 없었고 트라이얼 개념으로 Block 개수를 제한하여 맛보기를 해보는 정도가 가능했었다. 아직 Notion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단계였기 때문에 조금 간을 보는 느낌으로 2017년에 재직중이던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무단(?)으로 사용해보기도 했다. 꽤 감명을 받은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에 페이스북 등에 공유하고 주변에 가입을 권유했었다. 당시 나의 추천으로 가입한 사람들이 100명 정도 있던 기억인데, 덕분에 나는 노션에서 제공하는 레퍼럴 이벤트로 Block 개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아마 초대 인원에 따라 추가 Block을 제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Notion을 제대로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Notion이라는 도구는 자유도가 너무 높은 툴이어서 제대로 된 프레임워크 없이는 금방 정리가 어려워져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Notion을 메인 노트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인지 2017년, 2018년 무렵부터 나의 기록 행위가 표류하기 시작했다. 에버노트는 이제 구식이 되어버렸고 가격 정책도 오락가락에다가 제품도 뭔가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해서 너무 느려지고 있었다. 정착할 곳이 필요했는데 디깅을 조금 게을리한 탓에 이 노트 저 노트 사용하긴 했지만 Evernote가 해주던 기능들이 꽤 여러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용도를 나누어서 간단한 메모는 mac 기본 노트를 사용하고, task는 reminder와 calendar 그 외 레퍼런스 수집과 프로젝트는 Pinterest, Behance, YouTube의 저장 기능을 활용하고자 했다. 나름대로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아카이빙의 습성을 채우기는 턱없이 부족한 방식이었다. 그럼 Evernote를 계속 쓸 것이지 왜 그러지 않았냐고 하면, 뭔가 너무 변해버린 Evernote가 괘씸해서 지속하기가 싫었달까. 결국, 이런 난잡한 방식으로 기록을 하는 기간 동안은 내 생각도 정리되지 않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사는 느낌보다는 흐르는 물살에 휩쓸리는 느낌이랄까. 단지 노트 방식이 바뀐 것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던 것으로 후에 결론을 내렸다.

5년 정도. 그렇게 꽤 오래간 표류했다. 이외에도 Obsidian, Bear, Craft, Workflowy, Dynalist, Things… 외에도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노트의 컨셉이 마음에 들어 베타 신청도 해보고, 심지어는 Visual Studio Code를 클라우드에 저장해서 사용해보는 등 좋다고 하는 노트들과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들은 닥치는 대로 시도해봤지만 몇 일 쓰다가 잘 정착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마음에 드는 노트를 그냥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어느 정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까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실사용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이 노트 제작기는 꽤 많은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다뤄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2023년이 되어서야 겨우 기록 방식에 해답을 찾게 되었는데, Notion과 PARA Method를 조합하는 것이었다. PARA Method는 기록 방식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가 알게 된 개념이었는데 노트를 지속하기에 너무 좋은 프레임워크였다. 현재는 개인적인 취향을 덧대어 개조한 버전의 PARA Method를 사용하여 노트를 하고 있다. PARA Method는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잘 설명되어 있는 아티클이나 유튜브 비디오가 굉장히 많으니 궁금한 분들은 찾아보길 바란다.

이렇게 이상적인 노트 방식을 찾은 뒤에는, 생각의 축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으며 취향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으로 인한 창작의 재료들이 생긴다는 점이 좋았다. 그동안 종종 경험을 휘발시키지 않기 위해 사진과 글 영상을 남겼지만 음식이 그릇이 없는 상태로 있는 느낌이랄까. 현재 Notion은 정말 나의 Second Brain의 그릇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 나름대로 꽤 튜닝된 기록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따로 소개하고 싶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염원은 Evernote가 그랬던 것처럼 사라지거나 뒤처지지 않는 노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실 여전히 찝찝한 부분은 Notion은 데이터 구조가 마크다운 등의 표준을 따르고 있지는 않아서 만약 Notion이 잘못된다면 나는 마이그레이션 지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거의 20년 가까이 Digital Archive를 경험한 셈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든 변화하긴 하겠지만 노트와 기록은 아마 죽기 전까지 지속하는 행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나의 기록 방식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생산성 팁들을 블로그를 통해 앞으로 조금씩 소개해보려고 한다.